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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으면 참 좋은데../Book review

다양성, 좋은 말이 왜 불편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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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란 말에 담긴 시대의 분위기

 

언젠가부터 ‘다양성’이라는 말이 일상 속에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학교, 회사, 뉴스, 심지어 광고 문구에까지 등장하는 그 단어는 뭔가 고상하고 옳은 것처럼 들렸다. 다르다는 건 틀린 게 아니라는 메시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 그 모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자주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냥 좋은 말이라서? 아니면 뭔가를 덮거나 조율하려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일까? 피터 우드의 책 『다양성(Diversity)』은 이 질문에 날카롭게 파고든다.

 

캠퍼스에서 제도로, 제도에서 신념으로

 

피터 우드는 미국 사회, 특히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번져나간 ‘다양성’ 담론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결국 문화적 권력으로 작동하게 되었는지를 짚는다. 처음엔 포용을 위한 움직임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양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덕적 신념이 되었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선언이 되었고, 그 명제에 의문을 품는 것조차 꺼려지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다양성이 가치가 아닌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을 평가할 때 실력보다는 정체성이 우선시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입학, 채용, 심지어 교육과정에서까지 특정 배경을 가진 사람을 우대하는 정책들이 펼쳐지고,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역차별 논란을 낳는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다양성’

 

피터 우드는 다양성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다양성이 진짜 다양성이 맞느냐고 되묻는다. 특정 가치관이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일종의 강제력을 갖게 되면, 정작 다른 의견이나 입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다양성을 말하면서 비다양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이 이상한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진짜 다양한 사회는 찬성과 반대, 그 사이 어딘가를 아우르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런데 지금의 다양성 담론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정답’을 강요하고 있다. 피터 우드는 이것이 진짜 위험하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도 던지는 질문

 

이 책은 비단 미국 사회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도 이미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고, 많은 제도와 논의가 이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성별, 지역, 연령, 정체성 등을 고려한 정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갈등을 말하는 순간 “그건 다양성에 반하는 말 아니냐”는 반박이 따라온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그 말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다양성은 과연 ‘무조건 좋은 말’일까? 그 이면에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야 할 때다.

 

좋은 말일수록 더 조심해서 써야 한다

 

좋은 말일수록 무분별하게 쓰이면 안 된다. ‘사랑’, ‘정의’, ‘평등’, 그리고 ‘다양성’ 같은 단어는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억압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피터 우드는 『다양성』을 통해 그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예전처럼 쉽게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만큼 진지한 고민을 요구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다양성은 정말 무엇인지, 그 다양성이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다양성의 시작’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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