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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저자'의 글이 <예술>로서 여김을 받기까지는 반드시 '독자'의 존재가 필연적이다. 그들은 '저자'가 내용을 제공하면 세상에 내어 놓는 그릇의 역할을 했다. '독자'들은 내용의 의미를 알기 위해 정성스럽게 탐구했고 '저자'의 상황, 시대정신 등을 고려하여 의도를 깨닫고 '저자'를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그 글들은 중요한 시험 등에 출제되기까지 한다.
글이 그렇다. 좁게는 개인의 일기부터 시, 수필, 단편소설, 장편소설까지 다양한 장르로 집필된다. 그러니 거창할 것 없이 끄적거림까지도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의 주인은 '저자'다. 창조한 사람들이 그 창조의 이유를 알 것이다. 때론 자신이 알 수 없는 감정에 쓰게 된 글일지라도 글쓴이가 주인임을 부인당할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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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새 기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무리들은 글에 대한 자신의 느낌들을 정답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걸 듣다 못한 '저자'들은 자신의 의도를 분석 당하기 전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그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분별한 평가와 판단, 비판과 냉소를 서슴없이 뱉어댔다. '독자'들의 자유롭게 말할 권리로 인해 '저자'들은 의도대로 자신의 글을 해석당할 권리를 잃게 된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아무리 좋은 내용이 있어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그것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객이 전도되어도 괜찮은건 아니다. 그 지점을 아는 대중들이 그 힘을 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대게 대중들은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약자로 표현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몸집을 키운 대중들은 이미 갑의 위치에서 예술을 바라본다.
예를 글로 들었지만 수많은 장르의 예술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수 '아이유'의 경우 자신의 음반에 수록한 곡이 '로리타'에 대한 표현을 하고 있다며 뭇매를 맞았다.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대중들은 듣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흐른 후에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잊혀져갔지만, 그 시간 속에 창작자가 느낀 모욕 등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도리어 사과를 하는 사람은 상대적 약자였던 '아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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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부터 각 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흥행을 했다. 더 이상은 소재가 부족할 듯한데 현재도 방영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처음 도입 될 시기, 순수하게 나온 참가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을 피드백을 공중파에서 받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즌을 더 해 갈수록 객관성을 가지며 점수로 매겨졌다. 사실 예술이라는 모호한 영역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측정을 하는 수준이 되었다. 주로 실기 위주의 대학에서 그 방법을 사용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이라는 주관, '진심'이라는 건 크게 점수에 반영되지 못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진심을 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둑이나 강도도 범죄를 저지를 때 진심을 다한다. (진심이란 가치를 대하는 방식은 각자에게 맡기겠다.)
아무튼 그 영향인지 해를 거듭해갈수록 대중들은 어느 새 자신들이 심사위원인 양 그렇게 도가 지나쳐갔다. 심사의 자격을 논한다면서 유치하기 짝이 없게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 있냐'는 1차원적인 논쟁은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심사를 할 만큼의 특정분야에 대한 연구, 경험을 한 사람에게 심사의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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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자유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는 '배제된 존중'에 있다. 기준이 없는 무분별한 평가는 결국 진짜 가치를 지닌 예술들을 점점 헐벗게 만들고 반대로 깊이 없는 예술들이 시장에 즐비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결론은 우리가 양질의 예술을 만나기 위해서는 대중으로서의 책임, 그러니까 평가에 대한 가볍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면 몇 가지의 장점이 있다.
- 평론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평론시장이 대중들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더 치열한 연구로 무게감 있는 평론을 할 것이다.
- 시장경제의 가치평가에서 진짜 예술들이 보호받게 될 것이다. 휘발되는 감정 따위로 하는 평가가 아닌 객관화가 될 수록 깊이 있는 예술들이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 결론적으로 더 양질의 문화 예술이 대중들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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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그 해석은 늘 2등이며 의도의 뒤에 선다. 제 아무리 뛰어난 해석도 정답을 넘어설 순 없으며 그래서는 안된다. 사실 글로 시작하여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법과 질서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과 질서에서는 해석이 의도와 사실을 넘어서면 무고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이 대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되며 그 끝은 어디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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