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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불혹 : 마흔즈음 드는 생각/An outlook on the world

'해보지 않아도 아는 것' 과 '돼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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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어보지 않고는 엄마의 마음은 알 수 없다

#1

비판과 평가가 난무하는 시대. 상황을 타계하듯 일갈을 놓는 것보다 이 상황을 인정하고 시대정신으로서 받아들이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나 역시도 무언가에는 뇌를 거치지 않는 듯 곧바로 튀어나오는 비판과 평가가 있고 그래서 나로부터 시작해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대체 왜 나는 매사 비판과 평가를 서슴없이 할 수 있었을까?

대체 어떤 것에는 평가를 하는 것이 맞고, 어떤 것은 감상만 하는 것이 맞을까? 

 

아빠들은 출산의 아픔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2

어떤 일을 경험하지 않고 알게 되는 것은 지식. 머리로 상상하는 일뿐이다. 여행에 관한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직접 가서 느끼는 그곳의 정취와 온도 등으로 느끼는 현실감은 절대 상상으로 알 수 없다. 물론 저명한 뇌과학자들은 상상만으로도 이미 그곳에 간 것과 같은 효과라는 분들도 계시지만 맡아보지 않은 냄새를 상상할 수는 없는 노릇일 거다. 

사회생활도 그렇다. 내 기준에서는 나의 직장 상사들이 능력이 없어 보이고 도무지 저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갔나 싶을정도로 무력해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가 저 자리에서 해도 저거 이상은 할 것만도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원이 최대의 능력을 끌어올려봐야 사원이고 대리가 능력이 아무리 없다고 해도 사원보다는 경험면에서 월등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의 윗세대보다 환경적으로는 더 나아졌음에도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이고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가 되어보는 경험을 늦게 하거나 아직 해보지 못한 그룹들이 많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된 사람들에 자격에 대해 말할 때는 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며 자신도 못할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부모들보다 자신들이 더 그 아이들에 대해 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반려견, 반려묘 등과 함께 살면서 그것을 공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거기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댓글들을 매 번 찾아 볼 수가 있다. 

겨우 냄새만 맡아본 사람이 왜 맛을 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맛을 안다고 말하는 상황이 왜 자주 보여질까?

 

 

#3

수많은 정보의 바닷속에 살다 보니 이제는 지식기반의 시대가 아니다. 굳이 외우거나 알고 있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어느 정도는 다 알 수가 있다. 그래서 특정 직업을 경험하지 못해도 그 직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아는 방법들이 생겨났다. 오래전에도 책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었기 때문에 간접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손쉽게 빠른 속도로 지식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지식에는 담겨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시야가 담기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전문가라고 불릴 때에는 기술 자체에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그 기술을 다룰 때에 능력을 말한다.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기술을 발휘할만한 시야가 부족하다면 적시 적소에 그 기술을 펼쳐내기 힘들다. 간접경험을 했거나 지식을 손쉽게 취한 사람들은 시야가 좁고 한계점이 분명하다. 그래서 신입보다 경력자가 우선되는 것이다. 신입들도 어느 정도의 기술을 배우고 온다. 하지만 그 기술을 아는 것과 일에 접목하여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경험할 때에 그 마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식을 직접 키우는 입장에서의 아이 엄마가 자신도 엄마가 처음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 아이를 양육할 것이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닥쳐서 일을 할 때에 능수능란하다면 그건 인생 2회 차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일면만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겨우 그 순간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려고 든다. 그 엄마의 마음을 감히 가늠하려고 한다.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아기 뿐만 아니라, 개, 고양이 등등의 자기 인생의 시간과 비용을 써서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겨우 손가락하나로 상처를 주려고 한다. 

아무리 지식으로 충만히 무장된 사람이라고 해도 직접 경험해보고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에게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쉬운 일이다.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남에게 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역사들이 있기때문이라며 사정을 말하면서 왜 남은 그런 당신에게 지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할까?

 

#4

하지만 반대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도 있다.

-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다면 내년에는 자퇴를 하지 않는 이상 2학년이 된다. 그건 해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 대학교 졸업을 위하여 필수적인 토익 700점을 목표로 공부했고, 시험을 봤다. 가채점을 해보니 800점이 넘는다. 그럼 이번 학기에 졸업을 하게 될 모습을 알 수 있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 최근 개봉한 영화를 봤다. 헐리우드 유명한 사람이 주연을 한 공포영화였는데 나는 이 영화가 무섭지도 않고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 새로 생긴 음식점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돈코츠라멘을 먹으러 갔는데, 생각보다 육수가 진하지 않아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에는 평가와 비판을 '돼어야 알 수 있는 일'에는 감상과 감탄을 하면 좋을 듯 싶다. 사실 위에 두 가지는 내가 비용을 지불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도 나눠진다. 영화, 음악 등은 예술의 모호한 영역이라고 할 지 라도 시장에 나와 있다면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평가에 의해 돈을 벌기도하고 적자를 면치 못할 때도 있다.

굳이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표현할 필요도 없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먹었는데 맛이 없다면 당연한 평가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어느 개인의 일이고 일상이라면 우리는 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공개된 sns에서 함께 공유해서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자신이 모르는 마음들이 지켜질 수 있는 선이 필요하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당신의 자유로 인해서 누군가의 자유가 침해된다면 그건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어쩌면 정말 이러다가 비용을 지불하고 댓글을 달아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바바리맨을 잡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바바리를 못입게 하는 이 나라의 입법 특성상. 이런 식이라면 그렇게 되는 게 무리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댓글을 돈을 내고 다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 자중하면 어떨까? 

아, 다른 사람말고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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