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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불혹 : 마흔즈음 드는 생각/An outlook on the world

대한민국은 정말 의사가 부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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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돌아보니 사십 평생 병원신세를 참 많이도 졌다. 교통사고를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무려 6번이나 교통사고가 났다. 7살 때 길을 건너다가 택시에 치여 한번, 9살 때 아빠 뒤에서 길을 건너다가 오토바이에 치여서 한번, 성인이 되어 오토바이를 타다가 차와 부딪힌 것이 3번이고 차를 몰고 가다가 차 대 차로 사고도 한번 있다. 마지막 오토바이사고는 가장 치명적인 사고였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달고 산다. 이뿐 아니라 허리 디스크 파열로 한번, 어깨 회근근개 파열로 한번, A형 간염으로 한번. 내 몸 안에 왜 이리 많은 사고와 질병들이 있었는지 웬만한 정신력으로서는 저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난 내 생애에 있어서 단 한 번도 의사를 오래 기다리거나 만나지 못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다.
 
OECD국가 중 국민 당 의사 수 VS 의료접근성 
 

의사수와 간호인력 수는 OECD 평균 보다 적지만 병상 수는 3배 가까이 많다.(자료: 2023년 7월 복지부 )

 
최근 '의대정원 확대'를 놓고 <밀어붙이는 정부>와 그에 맞서 <파업하는 의사들> 간에 싸움이 연일 신문과 뉴스를 크게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보는 여론은 언더도그마 현상에 힘입어 웬일인지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대동단결이다.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이 던진 의견들에 나비효과가 어떤 파장을 불어올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총선을 앞두고 연신 부추기는 정치권과 이해관계의 반대편에 있는 여러 군중들이 의사를 놓고 몰매 때리는 광경을 매일 보게 되는 요즘이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선진국들에 비하면 적다는 의견들이 있다. 실제로 의사의 수가 적은 것은 맞다. 비교가 되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 비하면 국민 당 의사 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본다면 다른 결과가 보인다. 우리나라는 자신이 필요한 진료과목의 전문의를 만나는데 평균 1.4일이 걸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업을 하고 있는 현재의 기준으로 봐도 의료 접근성면에서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의사 수가 적은데도 왜 병상 수는 3배가 넘는지를 보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의사 수가 늘어나도 기피과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 - 위험도가 높다.

'의대 정원 확대'의 시발점. '의사 부족'의 문제는 주로 기피과에서 일어났다. 심혈관, 뇌혈관, 산과, 소아과 등의 파트들이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반영되는데 쉽게 말해 어려운 수술이라 위험도가 높거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적자를 보는 통에 사업을 철수하는 과목들이 되겠다. 응급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흑자가 나는 쪽의 매출을 가지고 메꾸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어려운 수술이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방에 들어가는 의사들은 '의료과실로 인한 구속'이라는 위험을 늘 가지고 있다. 혹자들은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나 책임을 묻지만, 어느 미친 의사가 자기의 커리어가 달린 수술을 하는데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환자가 죽게 되면 몇 년 동안의 긴 법정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며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기피과를 양산하는데 한 몫했다.
 

 의사 수가 늘어나도 기피과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 - 운영이 불가능하다.
 

03년 3월 초중고 폐교 현황 (출처 : 지방교육재정 통계청)

 
의사를 늘리면 지방 의료 부족현상과 기피과 인력 충원이 된다는 주장은 마치 선생님을 증원하면 지방 학교들이 살아난다는 얘기와도 같다. 과연 그런가? 

위 사진은 지방의 초중고등학교 폐교 현황이다. 비혼율과 저출산율의 증가로 함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절차일 것이다. 이는 지방에 소아과, 산부인과가 폐업하는 것과 매우 관련이 있다. 심지어 학교는 나라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건물을 유지하고 직원들을 고용하며 선생님들을 배출하는데도 폐교를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의사는 자기 돈을 들여서 건물을 짓거나 임대하거나 기기들을 구매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면서 자기 이익을 가져갈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나라에서 세금으로도 못하는 일을 의사라는 한 개인에게 짐 지어주듯이 한다면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의사를 늘릴 일이 아니라, 의사가 필요한 각 지방에 병원을 지어주고 시설을 넣어주는 것이 더 나은 해결 방법이 아닐까? 물론 수도권보다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한다고 해도 가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되려 의사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일까지 해야 그나마도 용기를 낼 수가 있다. 
 

의사는 어떻게 억대의 연봉을 받을까?

 

환자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과목들이 있고, 고객들이 자신의 미와 외모를 가꾸기 위해 방문하는 과목들이 있다. 둘 다 의사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시술과 수술을 하지만 방향이 다르다. 
의사는 연봉은 간단하게 말해 환자가 자주 내원하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실비 보험이 한창이고 보상률이 높을 때 의료비 지출에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누구나 자기 몸이 가장 우선순위이고 의료비가 저렴하다면 해볼 수 있는 진료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비에는 수요에 제한이 없다. 아래의 표는 이를 뒷받침한다. 

더군다나 요새처럼 외모에 대한 관심이 드높은 시대에는 목숨이 경각이 달리지 않아도 자신의 외모의 충족을 위해서도 병원을 방문한다. 이런 것들이 의사의 연봉 평균을 높이는 일이다. 
대학병원에 바이탈과 의사들은 주 80시간을 일한다. 연속 36시간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처우를 위해서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일에 찬성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의사들이 반대를 하는 걸까?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현장에 투입인력이 되려면 10년 후에나 가능하며 단순 의사 수가 늘어도 지금의 일들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겉모양만 가지고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선택적으로 주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것에도 거품을 물던 사람들. 의사들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고 억대 연봉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일을 더하고 하지 않고의 결정도 나라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 아닌가? 우리도 주 80 시간 일하면 지금보다 2배는 더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2028년 고갈 예정인 건강보험 재정

앞 서 말했듯, 의료에 대한 수요에는 제한이 없다. 만약 정부에서 시장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하여서 이를 다루었다면 큰 오산이다. 경쟁이 심화돼서 진료비가 내려가도 비급여 부분에서만 가능하다. 급여 부분은 의사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강보험 재정을 가지고서는 향 후 5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비급여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도 급여 부분을 40% 정도 가져가며 심지어 바이탈을 다루지 못하는 한방병원에서도 이를 가져가고 있다. 그렇게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이 되고 나면 그다음의 절차는 무엇일까?  '의료 민영화'다. 
의료 민영화라는 말만 나오면 거품을 물던 다수가 현재 그 일을 가속시키는 것에 동조를 하고, 그 반대급부인 의사들이 이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개인의 자유는 어디 가고 공산주의식 보건복지부의 발언만 남았다. 

 

<보건 복지부>의 박민수 차관은 개별적으로 사직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을 개인정보를 낱낱이 밝히고 최대 처벌까지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가 볼 때에는 단체행동으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 개개인이 앞으로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다른 일을 찾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정말 개선되어야 할 처우들은 그냥 둔 채로 앞가림만 하기 위해서 내놓은 정책들이 향 후 10년 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직을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을 볼모로 협박하는 건 의사가 아니다. 의사도 한 명의 국민이고 개인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가장 최소 단위이자 최대 단위는 개인이다. 그런 개인 상대로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하고 협박하고 자기 미래를 자기가 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국민을 상대로 협박하는 중인건 규모를 이룬 대중들과 보건복지부가 아닌가?
 

의사도 축구선수도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그 누구도 한 명의 국민이고 개인이다.


요새 참 많은 이슈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이슈들은 개인이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얼마 전에 끝난 아시안컵만 해도 축구 선수 개인에게까지 찾아가서 악플 테러를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는데, 국가 대표라는 건 우리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된 것이지, 우리를 대신해서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 명의 축구 선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그 부모들이 자녀에게 투자한 시간과 물질은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떤 결과이건 그들 인생에 축구 선수로서 커리어에 관련된 일이지 그들이 우승을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일까? 우린 그저 순간에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몰입을 할 뿐, 우리도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국가대표다. 

대중이라는 규모를 이루어서 같은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반복하고,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결국 방향만 바꾸면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전체주의가 이 나라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떨린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부모님과 부모님 세대, 그리고 그 윗 세대의 피와 땀이다. 
나는 그래서 개인에 가치에 대해 더 공부하고 연구하며, 개인과 개인이 행복해서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꼭 그렇게 되길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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