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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불혹 : 마흔즈음 드는 생각/An outlook on the world

사회적기업이 과연 필요할까?(feat. NGO-비영리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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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도 비영리단체에 시작과 과정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10만 원을 후원한다고 해도 도움이 필요한 대상에게 전적으로 10만 원의 보장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규모를 이룬 회사들은 조직화가 되고 그렇게 한 번 만들어지면 10만 원이 아니라 그 몇 배의 혜택이 갈 수가 있다. 그래서 <컴패션>이나 <월드비전>처럼 비영리단체가 규모를 이루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반대로 작은 단체들이 많이 생기는 것은 앞에 말한 이유 때문에 회의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어떤 단체도 작았던 시절은 있고, 그 안에 소속된 사람들의 급여나 복지 수준이 영리를 목적으로 세워진 기업들에 비해서 현저히 적음에도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이 계시니 그 마음은 존중한다.
  


 
#2
 
20대 시절, 가수 지누션의 '션'의 간증을 듣고, 나 역시 한 사람이라도 돕자는 생각으로 <컴패션>에 몇 년간 후원을 한 적이 있다. 후원할 나라, 아이를 선택할 수 있고 대개는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한다. 나는 필리핀에 '제이드'라는 아이를 후원했는데 그 아이가 9살일 때 만나서 12살까지 3년 정도 기간이었다. 종종 편지도 보내오고 나도 답장을 할 수 있어서 마음 한 켠으로 보람을 느꼈었다. '제이드'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었고 자신 말고도 동생이 여섯이나 더 있었는데 여건만 된다면 동생들까지도 후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드'의 가족들이 <컴패션>의 후원이 불가한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후원이 끊겼다고 했고 그러니 다른 아이를 후원하면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주었다. 시작은 어떻게든 했지만 부담도 있었고, 후원을 하다가 중단이 되고 나니 그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나름의 책임감과 감정이 생겼던 것 같은데,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 그 이상 후원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가끔 '제이드'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3
 
앞 서 말했지만 후원받은 돈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기업은 여타 기업들과 다르게 개체 수가 많아질 필요는 없다. 후원받은 재원을 어떻게 잘 분배하여 교육, 인프라를 제공할 지에 초점이 있기에 재정의 투명성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도리어 수가 많아져서 관리가 힘들어지면 부패로 이어질 가능성만 높아진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1만개가 넘는 시민단체들이다. 


하나 예를 들자면 최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공원시민모임'은 얼마 전까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제3자 변제로 판결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걸 반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미쓰비시 중공업의 징용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자 판결금의 20%에 해당하는 약정금 지급을 요청했고 지급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유가족들에게 내용증명까지 보냈으며 신 일본제철 피해자 유족들에게도 10%의 보수지급을 요구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이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잃은 것만 있는 외교를 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2023년 5월 29일자. 한국경제 사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비용이 발생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피해자들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하고 장기간에 걸친 재판, 집회, 서명운동과 홍보 등 각종 활동에 대한 비용이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비용들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그간 활동을 하면서 받은 자발적 기부금이나 국가보조금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았나? 더군다나 지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세부 내역이 공개될 수 없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이쯤 되면 과연 이 시민단체들이 대체 누구를 위해 생겨난 것인지 의문이다. 피해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피해자들의 판결금을 나눠먹겠다고 내용증명까지 보내는 처신은 마치 위안부 강제징용 할머니들을 위한다면서 그저 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긴 어떤 의원과도 결을 같이 한다. 

한편,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각종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지원액이 20조 원을 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재정자립도가 낮고 회계 투명성도 취약해서 보조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횡령, 회계장부 조작 등이 만연하다고 한다. 그러니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다.

국민을 말하면서 국민을 위한 이가 없고, 시민을 말하면서 시민을 위한 이가 없고, 약자를 위한다며 약자를 위한 이가 없었던 것이다. 
 


 
#4
 

유명 연예인이나 공인들의 기부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린다. 기부의 이유가 이미지마케팅이었든, 세제혜택을 받기 위함이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작든 크든 간에 자신의 돈을 내놓는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각 업계에서 고점을 찍은 굴지의 대기업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법인세를 내고 있어 굳이 사회적 기업이라고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세금으로 국가에 기부를 하고 있는 셈이고, 또한 거기서 일하는 높은 연봉의 직원들도 가장 높은 세율의 소득세를 내고 있을 테니 우리는 생각도 못할 만큼의 기부를 매 달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들이 낸 세금을 통해 여러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심지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도 복지를 받는다. 세금납부와 기부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는 점이며, 간혹 많이 벌면 많이 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의무는 세상에 없다. 그런 말들은 다 그만큼 벌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율배반적인 상상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도리어 비영리 단체는 정부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의 손길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존립자체가 의미 없다.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연봉이 높은 직장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하면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돕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자 기부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은 포장되지 않을 때 가장 이타적인 것이 된다. 

 
 
 
 #5

우리는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을 위한 이기심이 있으며 이 이기심은 결국 가장 이타적인 것이 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자신의 큰 노력이 아니고도 무언가를 보고 있으며 만지고 있고, 먹고 마시고 느끼고, 입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의 상상력이자 그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아주 간혹 이타적으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들 같은 성인들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도 정서적 가치인 '보람'을 사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남을 위해 사는 것처럼 자신을 현혹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더 이상은 선동당하거나 휩쓸리지 않고 인생을 자기것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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