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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불혹 : 마흔즈음 드는 생각/An outlook on the world

나는 너와 싸우지 않는다. 그저 고정비와 싸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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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은 고정비와의 싸움이다. 고정비를 줄이는 것은 삶이 가벼워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행복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후로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을 필수로 해야 하고 그 외에 일, 취미, 관계 등이 추가되어 삶을 무겁거나 가볍게 만든다. 심지어 필수적인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양질의 것으로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며 공부를 잘하기 위해 시간을 배분하고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어느 하나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이 모든 것을 정하는 기준을 통틀어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표현한다. 

 


 

#2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입에서부터 거부하는 쓴 물질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걸 본능적으로 원치 않았다. 군시절 소대부관님이 종이컵 한 잔 가득 따라주셨던 담금주를 먹었을 때 쓰지도 않았고 아침에 숙취도 느껴지지 않아서 술이 꼭 쓰지만은 않다는 걸 기억하고 있지만 술이 쓴 것 이외에도 술을 마신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거부반응을 느꼈다. 실제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범죄는 술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굳이 술을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애주가들은 요리사의 칼과 강도의 칼이 다르듯 술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냐는데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게 의지적으로 산다고 생각지 않는다. 젊은 시절 술을 좋아했던 부류들은 나이가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내 경험상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라는 게 없이 산다. 그래서 결국 술에 의존하게 되어서 본인의 건강을 해치거나 가족 간에 불화로 이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3

사회생활에서 술은 마시지 않으면 힘들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어렵게 잡은 직장에서 계속적으로 술을 권하는 상사 때문에 압박을 느껴 퇴사를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도리어 역시 술을 권하는 자체도 술의 단점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술과는 관련도 없는 내가 간염 때문에 한 달 넘게 입원한 경험도 있어 그 후 술과는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에 건강이 포함된 사람이니 필연적으로 담배를 피울 리도 없고 그렇다고 맨 정신에 술자리 이후 2차, 3차를 따라가서 유흥을 할리도 만무하다. 

대신에 나는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해서 신문을 보고 퇴근 후에 책을 읽는데 1~2시간을 할애한다. 혹자들은 어떻게 신문과 책을 읽는 것이 술과 담배를 즐기는 것과 비교대상이 되는가를 물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신문과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려면 퇴근 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침에 미리 출근하려면 전날 피로하지 않게 준비를 해두고 잠을 청해야 한다. 그러니 술과 담배가 어떻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술이나 담배처럼 단 한 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습관이 되는 것은 당연히 무거운 재료이고 나는 그것들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대비 훨씬 더 삶의 질을 높인다고 결론 내렸다. 

 

 

길이 정해진 사람이 어딜갈지 모르는 사람보다 피곤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일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면서 다소 까다롭다는 평을 듣는 편이다. "너 사는 게 참 피곤하겠다.", "너 참 복잡하게 산다."라는 얘기도 적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 삶은 피곤하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쉽고 편하다. 이미 답이 나와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계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이 보기엔 제한적인 삶을 살고 모든 자신들의 권하는 것을 반대만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미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결정해 놨고 어떤 길을 갈지 내가 정한다는 뜻이다. 도리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복잡하지, 늘상 생각하면서 걸어온 사람이 왜 복잡하겠는가? 추측건대 피곤하고 복잡함을 느끼는 건 본인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 나를 본인들이 그렇게 느껴서 일 것 같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방법으로만 공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역차별적인 사람들과 같다. 나는 마시지도 않는 술이 있어야만 친목하는 그들과 늘 함께 해왔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함께해 준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나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물론 나 역시도 누군가에 비하여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무언가를 더하기도 하고 중요한 것들이 빠져있기도 할 것이다. 좋은 결론을 내지 못할 때도 있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려면 적어도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고 가야 후회가 적다. 남에게 이끌려 사는 사람들은 상대에게도 그만큼의 요구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이며 삶을 살면서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고정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지 점검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너는 내가 복잡해도 나는 내가 복잡하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좀 가만히 두고 너를 좀 정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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