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부터 아침 4시간 정도 작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기차역 1층 대합실 내에 자리한 매장으로 문이 열릴 때마다 승객들과 함께 들어오는 칼바람이 카페에 일하던 젊은 친구들을 밀어내고, 제법 인내심 있는 나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흔한 에어커튼 하나가 없고 말이 실내지 뒤로는 유리벽 하나, 앞으로는 계속 여닫이는 자동문 덕에 해가 뜨기 전까지는 정말 곤욕이었던 겨울이었다. 흡사 혹한기 훈련을 연상하게 만드는 추위를 버티느라 나 역시도 많이 힘들었는데 그 찬바람을 처음 맞았을 때, 그만두겠다며 나간 친구들에 대한 이해와 홀로 남아 장사를 해야 하는 여사장에 대한 측은함이 팽팽히 맞서다 결국 지금까지 왔다.
근처 대학교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느라 미리 와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대합실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개 어르신들이다. 열차를 타려고 대기를 하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고 간혹 기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중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따뜻한 캐모마일 한 잔을 시키는 한 아주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짜증 섞인 얼굴로 캐모마일 한 잔을 주문했다.
내가 이 분을 기억하는 이유는 자주 와서가 아니라. 그 추웠던 겨울, 대합실 입구부터 끝자락까지 배회하며 걷기 운동을 하시는 바람에 자동문이 반복하여 열리게해서 여지없이 찬바람을 맞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문이 열리니까 자꾸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참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그 캐모마일 아주머니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캐모마일 아주머니 : "아직 추운데 왜 에어콘을 틀어놨죠?"
나 : "글쎄요, 아직 아침에는 날이 서늘한데 시원하네요. 에어컨을 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역무실에 문의해 보세요."
참고로 나는 손님들에게 살갑고 친절한 편은 아니다. 어르신들은 주로 사적인 이야기,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듣지 않고 그냥 내 할 일을 하러 간다. 그러면 듣는 시늉조차도 안 하는 날 보며 제자리로 돌아들 가신다. 서비스정신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서비스의 기준을 가지고 굳이 싸우고 싶진 않다. 본인들의 가치관대로 행동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잠시 후, 역무원이 와서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지만 춥게 느껴지시면 덮고 계시라고 친절하게 자기가 쓰던 무릎담요를 가져왔다. 그 사이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서울 어느 병원에 가신다는 것과 허리 수술을 하였는데 잘못되어서 2년째 재활을 하러 다니느라 심신이 지친 상태라는 이야기. 그래서 가족들도 힘들어하고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주머니가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내 이야기를 짧게 전했다.
나 역시 2번의 허리시술을 받았었고 재활 후에도 몸상태가 좋지 않아 우울증이 올 정도로 힘들었는데 괜찮아졌다는 이야기. 물론 내가 좀 젊은 사람이라 회복이 상대적으로는 빠를 수 있지만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반드시 나아질 것이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지연이 되니 꼭 나을 거라 믿고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매번 올 때마다 왜 그리도 세상을 다 산 표정이었는지. 왜 우울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였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정도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현재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 '상실감'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반드시 나을 거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처음으로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상실감은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혹은 사실에서 비롯된다. 앞을 봐야 하지만 도무지 보고 싶지 않고 보이지도 않아서 자꾸 뒤를 쫓게 되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본다. 나는 조금 일찍 겪게 된 일일지도 모른다. 허리시술 후에도 진전이 없어 운동 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을 때도, 양쪽 어깨의 회전근개가 모두 파열되어서 하던 일을 그만둬야 했을 때도, 교통사고로 무릎과 발가락이 골절되는 바람에 한 동안 걷지도 못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병원을 다녀야만 하는 나의 처지가 그 아주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 스스로에게도 늘 해주는 말이라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꼭 어떤 아픔이 아니라도 해도 우린 늘 '이젠 뭘 하더라도 그때와 같을 수는 없으리오' 하는 조피디의 <친구여> 속 노래가사처럼 상실감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데 익숙해져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아직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대한 나의 냉소적인 반응은 사실은 '상실감' 탓이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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