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과자는 얼마가 적당합니까?
KBS 예능 <1박 2일>에서 '옛날과자'를 키로 당 7만 원에 파는 장면이 나와 사람들의 뭇매를 맞았다. <인간극장>에 출연하여 옛날과자의 진수를 선보였던 '과자왕' 강성구 씨는 이 일에 일침을 가하면서 원가를 공개하겠다고까지 했다. 급기야 상인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는데 불씨를 잠재우기에는 너무 커버린 상태였다.
'옛날과자'를 평소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그 시세가 얼마 정도에 측정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재료를 쓰며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도 몰라서 그저 '과자'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생각하기에 '비싸다'는 생각부터 드는 건 사실이다. 소비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상품의 적절한 값'이라는 기준이 있기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 만연한 '원가 대비 적정마진'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이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 과연 상품에 '적정마진'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애당초 시장경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원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핸드폰의 생산원가 자체는 시중에 판매되는 가격의 3분의 1 정도 수준이라고 하는데, 100만 원짜리 핸드폰이 원가 30만 원이라고 해서 30만 원으로 그 핸드폰을 생산할 수 있는 개인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100만 원에 판매가 되더라도 영업이익은 10% 수준이다. 원가가 30만 원이라도 그 외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합산하여 계산하면 기업에서 순이익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10만 원 내외라는 것이다.
단순히 원가 30만 원짜리를 100만 원에 팔았으니 70만 원이 이득이 아니냐고 말하는 건 사업의 구조와 원리를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계산이다. 그러니 원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겠나? 또한 같은 이름의 상품이라고 해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 파냐에 따라 원가는 수시로 달라진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정보'의 영역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가장 가치가 높다.
- '정보'를 대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이기심 때문에 생기는 악법들
사업을 하는 개인부터 기업까지 그들이 가진 비결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각 사업에 주를 이루는 고유한 비결들은 그 사업 자체이자 누군가의 시간과 열정을 들인 결과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비결 등을 하나의 '고급정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대를 이어 사업을 영위하는 가업이라면 그들의 고유하고 집약적인 기술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 노하우를 가진 기업가들이 별다른 경력이 없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도 노하우를 빌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프랜차이즈'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많은 대중들은 그 비결들로 인한 상품들을 가까이서 만나게 되고 결국 하나의 사업이 각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가업이 번성하여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대기업이 되면 자신들이 주로 만들어 팔던 제품들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 묶여서 제한을 받기도 한다. 참고로 콩나물과 두부를 혁신적으로 판매하여 대기업이 된 <풀무원>은 이 법안에 묶여 두부를 못 만들게 되어 골치를 썩기도 했다.
이러한 정보는 사업이 아닌 개인의 구매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 때 뜨거운 감자였던 <단통법>이 생긴 시발점은 "왜 같은 핸드폰을 구매하는데 누구는 싸게 구입을 하고 누구는 비싸게 주고 사냐"하는 불만에서였다. 누군가가 발품을 팔거나 인터넷을 뒤져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 내면 편승하는 사람들이 있고, 대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공평하지 못하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자신들이 호구가 된 것이 기분 나쁘다는 의견인데, 도리어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이득을 얻게 되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들여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호구가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결국 <단통법>으로 인해 여러 위약금제도가 추가되고 다 같이 비싸게 사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보의 가치를 우습게 여긴 결과다.
정보가 가치로서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도 개발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 그 핸드폰 안에서 자유로이 검색을 하고 흥미 있는 영상들을 볼 수 있는 인터넷망, 플랫폼 등 누구라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가 있기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욕구의 결과로 부를 누릴 수가 있다. 상품이라는 것이 '원가'처럼 보이는 것으로만 계산된다면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명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교촌치킨은 왜 5만원이 아니라 3만 원일까?
'통 큰 치킨'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2010년 <100분 토론>의 주제로까지 나올 만큼 이슈가 되었다. 골자는 대형마트에서 치킨 한 마리를 5천 원씩에 파는 바람에 프랜차이즈 치킨(당시 만 원 중후반대)이 위협을 받으니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것. 가격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느낀 프랜차이즈 협회가 자충수를 둔 것이다. 사실 집에서 배달로 시켜 먹는 치킨과 직접 가서 혹은 쇼핑하다가 구매하여 집에 와서 먹는 치킨은 시장에서의 위치가 전혀 다르다. 이름만 같은 치킨이지 판매 대상이 다르니 서로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당시 여론은 치킨 프랜차이즈의 손을 들어주었고, '통 큰 치킨'을 시작했던 롯데마트는 사업을 철수했다. 후일에 알고 보니 이미 규모의 경제를 선점한 프랜차이즈 협회는 롯데마트에 비해 원가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시장에서 싸우지 않고 여론에 호소하는 그 모습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거짓말로 선동한 것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대형마트에서 파는 치킨은 여전히 저렴하다. 세일을 하면 만원도 안될 때가 있고, 보통 만원 초반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반면 프랜차이즈 치킨은 2만 원이 넘어 교촌치킨의 경우 3만 원까지의 인상을 언급했다. 여론을 보니 치킨 값이 비싸다는 의견들이 있고 배달비를 처음 시도한 것도 교촌치킨이라는 낭설까지 퍼지며 불매운동까지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때는 프랜차이즈의 손을 들어주고 대기업의 횡포라는 것에 찬성을 하더니 이제는 치킨 프랜차이즈의 횡포라고 말한다. 나 역시 거짓으로 선동했던 프랜차이즈협회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치킨 값이 인상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대신 치킨을 시키지 않는 것으로 나는 내 의사표시를 하겠다. 그리고 당신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왜 5만원이 되지는 못할까?"를 생각해 보면 쉽다. 맞다. 너무 비싸서 먹을 사람이 현저히 적을 것이다.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진다. 가격상승을 예고했던 교촌치킨은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BBQ치킨과 1~2위를 다툰다. 공급이 그 수요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가격이 자연스레 상승되는 것뿐이다. 그래도 판매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기 때문이다. 3만 원이라는 가격이 비싸다면 사지 않으면 된다. 5만 원에 판매를 하건 10만 원에 판매를 하건 판매자의 마음이다. '옛날과자'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불매 운동을 할 필요가 뭐가 있나?
우리는 소비자로서 구매를 하거나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말해야 한다.
- 생계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당신이 만약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안에 물정을 전혀 모른 채, 누군가 폄훼하고 사실과 다른 소문을 낸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운영이 위태롭고 어려워진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하겠는가? 일면식도 없고 단 한 번도 매장에 방문한 적도 없는 불특정 한 다수가 그렇게 한다면 생계의 위협을 받고 매장 운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소비자가 아닌 다수를 이룬 단체로서 말한다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의 한 마디는 여론을 생성하기에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우리는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소비자'로서 말해야 한다. 그래야 다수를 잠시 잠깐 속이고 망각시키기 위한 싸고 질 낮은 상품들이 아닌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질 좋고 저렴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명품의 원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원가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얼마나 소비자에게 절실한 상품인가? 필요하고 만족을 주는 상품인가?"가 중요하다. 아무도 명품의 원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팔던 '옛날과자'는 어쩌면 단순한 먹거리기 때문에 더 예민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명품은 가방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먹거리도 명품이 있다. 여전히 더 좋은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격 때문에 다수를 이룬 여론이 개인을 몰매 때리고 재판하는 행위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소비자를 가장한 소비하지 않는 전체주의는 자격이 없다. 부디 각 사람이 소비자로서 자격을 갖고 가까운 곳에서 명품을 만나볼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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