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을 봤다. 요새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누가 출연을 하는지도 미리 알고 어떤 연기를 펼칠지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난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해당이 되지 않았고 아무 정보가 없이 보다 보니 더 재미있게 집중해서 보았던 것 같다.
1화 초반부터 김새론이 나왔다. 영화 <아저씨>의 '소미'라는 역할의 아역배우로 나와서 각광을 받았던 배우고, 성인이 되어서도 역변 없이 나타나 여러 예능에도 출연하다가 작년 5월 경 음주운전으로 길가에 변압기와 주변시설들을 망가뜨리는 사고를 낸 후로 재판을 받고 자숙 중이라고 알고 있었다.
역시나 드라마 초반부터 김새론을 포함한 배우들은 좋은 연기를 보여줬고 드라마에 꽤나 몰입이 된 나는 마지막 화가 되서야 빠져나왔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새론이 맡은 역할이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는 점인데 음주운전의 여파로 편집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교통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크게 다칠 수 있고 심하게는 사망에 이르게까지하는 큰 사고다. 음주 상태에서의 운전은 그런 교통사고를 담보하는데다가 자신이 인지를 한 상태에서의 선택이므로 사회적 질타를 받을만하다. 비록 혈중 알코올수치가 낮다 하더라도 높은 확률로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적 사실이거니와 상식이다. 마치 초보운전자가 숙련된 운전자들보다 사고 확률이 높은 것과 같다. 한편, 졸음운전이나 운전 중 핸드폰 사용도 같은 맥락에서 위험하다.
같은 죄를 지어도 유독 연예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는다. 음주 운전 자체가 큰 잘못이기 때문에도 그렇거니와 유명할수록 가진 자, 부유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분노를 더한다. 그래서 특정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이라면 관련 게시판을 찾아가 퇴출하라는 항의글도 올리고 전화로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방송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SNS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에 따른 판결이 나왔고, 그 당사자가 판결을 수용하고 이수했다면 그 이상은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 사람의 생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또 다른 범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다수가 하는 사적제재는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47.5건의 음주운전 사고가 난다. 적발로 계산한다면 아마 몇 배는 더 될 것이다. 일반인들이 그렇게 음주운전 사고를 낸다고 해서 본인들의 생업을 못하게 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구속이 되기도 하고 큰 금액을 배상하기도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사고를 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경우 사람들이 그들의 생업까지 반대하고 나서는 행동을 한다. 나는 이 지점이 굉장히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살인을 한 사람이 법치에 따라 법의 심판을 받은 후에도 용서받지 못하고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후 사회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남을까?
살인자라고 해서 기회가 없다면 아마 그 사람은 다시금 살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뻔뻔함을 더해가는 정치권은 다르다. 국회의원들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고 직접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다.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된 만큼 그 무게가 다른 직업들과 비교불가다. 간혹 연예인들을 공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대정신에 따라 단어의 뜻이 포괄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인일 수가 없다. 연예인들의 세계야말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집단이다. 그 안에는 자신의 생계가 어려워 다른 일을 하면서 직업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들을 공인이라는 단어로 함께 묶는다면 가져가는 것은 없고 대중의 감시만 받는 무거운 짐만 얻게 되는 셈인데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이재명 야당 대표는 음주운전 경력이 있다. 그 지점때문에 지지하지 않거나 자격을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에서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사람들이 이재명대표에게 투표했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그 사람의 능력치를 보고 나라의 운영을 맡기려고 한 것이다. 연예인의 음주운전에 제동을 거는 사람이라면 이재명대표의 지지자여서는 안 될 일이다. 만약 연예인에게는 무겁게 질책하면서 이 대표에게는 투표하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라는 당의 이미지에 박차를 가하는 일일 것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국회의원도 이러한 지지를 받는 판에 연예인이 무엇이라고 질타를 받고 자신의 생계까지 포기해야 하나? 적어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대통령 후보에 나올 권리가 있고, 지지자들은 선택할 권리를 갖듯이 연예인도 자신의 일을 여전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보고 안 보고의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나오지 못하게 막을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학교폭력에 대하여 심각히 다루고 있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서인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그에 힘입어 자신도 피해자라며 용기있게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반면 가해자의 신상을 터는 등의 사적제재를 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이 일이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화풀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하여 생긴 단체가 뒤로는 수익금을 가지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데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녕 피해자들을 위했다면 '제삼자 변제'를 통해서라도 피해자들이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려 했던 정부의 입장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반대를 하면서 가해자들을 벌해야 한다고 하며 피해자들을 영원히 과거로 밀어 넣기 위해 코인을 사용해서는 안되었다. 학교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들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외에 규모를 이룬 여론이 가해자들을 찾아가 사적제재를 하는 일은 도리어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용서라는 것은 사과를 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사과를 받아주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앞을 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에도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다면 현재 역시 쓸모없는 과거로 재생산되면서 미래는 그저 과거의 확장판이 되고만다.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과거의 학교폭력 피해로 인해 지금을 살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가해자를 찾아가서 똑같이 되갚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가 과거를 잊고 지금을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자신을 과거로부터 놓아주는 일이다. 혹여 가해자가 자신의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철지난 과거를 끄집어낸다고 난색을 한다 해도, 당장을 면피하기 위해 틀에 박힌 사과를 한다고 해도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가해자들도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들의 마음을 돌아보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로 앞을 도모할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배우는 연기하는 자리에서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에서 대중들도 각자 맡은 자리에서 말이다.
'별책불혹 : 마흔즈음 드는 생각 > An outlook on the worl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것이 종교가 되는 대한민국(feat.성공비결) (0) | 2023.07.19 |
---|---|
'속궁합'은 몸의 대화가 아니라, 진짜 대화로 알아야 한다. (0) | 2023.07.17 |
우리나라에 명품이 나올 수 없는 이유 (0) | 2023.06.16 |
아침에 3개를 받으면 저녁에는 4개를 받습니까?(feat.朝三暮四) (0) | 2023.06.15 |
나는 너와 싸우지 않는다. 그저 고정비와 싸울 뿐 (0)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