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기업의 감세 정책과 같은 세금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소위 '가진 자'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소득격차에 따라 선별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부담스러운 소득세를 낸다고 생각할 만큼 벌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상위 몇 프로의 사람들의 마음은 모른다. 다만 월 200만 원을 버는 때 내는 소득세가 단 돈 2만 원 내외에 그치는 반면, 1000만 원을 버는 때의 소득세는 과세표준에 따라 100~200만 원을 내야 하는 차이를 보니 다소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남 얘기 하는 사람들이야 '많이 벌면 내야지'라고 하지만, 4대 보험을 포함해 자기가 번 수입의 10~15%의 세수를 부담하는 일도 어렵다 생각하면서 그들이 내고 있는 30% 이상의 세율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기부까지도 당연시 여기는 여론도 있으니 내가 소득이 높은 것이 죄가 되는 것인가? 생각할 것도 같다.
#2
보통 세금을 걷는 방식은 크게 비스마르크(노동자)와 베버리지(전 국민)로 나뉜다. 전자는 소득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거나 내지 않고 소득이 많은 사람은 크게 내야 하는 방식. 후자는 모두가 걷어서 그 안에서 나누는 방식이다. 물론 여기에도 소득별 차이는 있다. 우리나라는 전자의 경우인데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방식은 가장 하단에서 소득세를 면제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이미 세금을 내지 않는 것으로 복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자신들의 몫까지 몇 배를 부담하는 고소득자에 대한 감사함은 커녕 도리어 스스로 갑의 위치가 되어 그들을 검열하려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마치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는 엄마들에게 육아법을 지도하려는 미혼 여성들 같은 태도를 보인다.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통계로 보자면 우리나라의 근로자 중 소득이 적은 사람은 아예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비율은 자그마치 37.2%나 된다. 근로소득이 있는 1948만의 사람 중 1224만 명은 소득세를 내고 725만 명은 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은 과세표준 1천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이지만 복지혜택이 집중되는 만큼 앞으로는 어느 정도 부담을 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이미 상위 10프로의 소득자가 전체 세수의 80프로를 감당하는 상황에 저소득자들도 어느 정도는 세금에 대한 압박을 가져가야 고소득자들의 조세저항을 막을 수 있으며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라면 고소득자들이 내는 세금도 줄어들기 때문에 필수 불가결한 일일 것이다.
#3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나라로부터 중식을 제공받았다. 1학년 때까지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것이 2학년 즈음에 급식실이 생기면서 소득이 낮고 어려움에 있는 친구들은 한 반에 몇 명씩 중식을 제공받았다. 평소 도시락도 챙기지 못했던 나는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 덕인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키가 무려 10cm가 넘게 자랐다. 나는 내가 가난하거나 어렵다는 사실이 다른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았었다. 도리어 그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내내 새벽 일찍 일어나 신문을 돌렸고, 방과 후 백화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아이들에게 가난은 부끄러움이고 숨겨야 할 무언가인 것 같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 때문에 수치심을 느낄 아이들을 위해 모두가 중식을 제공받게 되고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학비도 무상이다. 대학교를 진학하면 국가장학금이 있고 여러모로 나의 학창 시절 때보다는 훨씬 좋은 복지를 받고 있다.
선별적인 복지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가난이나 개인적인 어려움을 숨기려는 이유로 하게 되는 무차별 복지에는 반대한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철저히 알았으면 한다. 적어도 내가 받는 도움이 어디서 나오는지 내 처지가 어떠한지를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자신에게 도움이 나왔던 곳을 향해 감사함은커녕, 바라는 것을 당연한 듯 여기고 책임 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부자들이 자기 돈을 뺏어서 부자가 된 줄 아는 것이다.
혹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권리 등의 허울 좋은 말들을 늘어놓지만 그런 권리는 실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에 인도의 '불가촉천민'이나 현재도 여전히 인권을 유린당하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은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초두에 말했지만 대한민국은 상위 10프로가 전체 세수의 80프로를 담당하고 있다. 그 세수로 우리나라의 복지를 만들어 간다. 부를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수입의 큰 부분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직접적인 복지혜택을 받거나 간접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등의 복지를 받는다. 세금은 사회를 이루어가는 일원으로서 의무로 부과되긴 하지만 그 비율이 높은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꽤나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4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소위 '가진 자'를 보면서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적대감을 여감 없이 드러낸다. 대기업에 취업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반기업정서를 가진다거나, 삶의 질이 높아지길 기대하면서 경제성장에 반대되는 사회주의 정책에 표를 던진다.
사람들은 탓할 거리를 찾는다. 어떤 이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이 옛말이라고도 하고, 부모를 잘 만나는 것 외에는 부자가 되는 길이 협소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부자들은 지금도 적다. 부자가 되는 길은 그렇게 어렵다.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새로 거듭난 것은 불과 한 두 세대 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이 경제 성장을 하고 자동차를 타고 다닐 당시 우리는 말과 소를 타고 다녔다. 필리핀보다도 못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반도체는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사'자 붙은 직업이 아니어도, 개천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게임하나 만 잘해도 인정을 받고 억대 연봉자가 되는 세상이다. 그렇게 불평하는 부모덕을 본 세대는 겨우 한 두 세대일 뿐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부자들이 대를 이어 부자가 되는 것을 지적하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부자가 되는 일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윗 세대들이 갈아 넣은 인생을 토대로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그들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가장 하단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빈부격차가 아니라 가장 하단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복지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안다면 그들을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응원하며 지금보다 더 성장하길 기대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금도 힘들다고 하면서 대기업이 줄어들고 부자들이 사라지면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시작은 본디 고단하다는 걸 인정하는 선에서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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