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나를 삼키기 전에, 나는 떠났다
2년 전, 나는 서울을 떠나 원주로 도피해왔다.
‘이주’라기보단 ‘피신’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그때 나는 연고 하나 없는 지역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서울에서 겪었던 이별의 슬픔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더 컸다.
그 감정을 버티는 게, 더는 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은 이미 살아가기엔 너무 비싸졌다.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평균적인 연봉으로는
삶에 대한 최소한의 만족도조차 유지하기 힘들다는
차가운 수학적 계산도 있었다.
실연 후, 좀처럼 방구석에서 움직이지 않던 나는
숨을 틔우기 위해
강원도 고성, 속초, 양양, 그리고 원주·제천·충주를 떠돌았다.
공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메말라 있었고,
끼니도 잘 챙기지 못했다.
그저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것을 ‘여행’이라 부르기도 어려웠다.
사실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단짝이던 친구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은 서울은
더 이상 내게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거리를 걷다가도, 카페에 앉아 있어도,
모든 풍경에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별 후의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의 지도’였다.
그래서 나는 급진적으로 움직였다.
가보는 도시마다 집값을 알아봤고,
몇 개의 월세 방을 실제로 둘러보기도 했다.
서울을 떠날 수 있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떠나야만 할 이유들을 체념처럼 확인하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원주’에 내렸다.
지금의 구(舊)원주역.
한산하고 오래된 상가들이 줄지어 있었고,
거기엔 아늑한 시골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큼직한 보건소와 중앙시장, 도심의 모습이 나타났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
그게 원주의 첫인상이었다.
서울처럼 빽빽하지는 않지만,
살기에 부족하지도 않은—
선택적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절할 수 있는 도시.
서울에서는 건물도, 사람도, 거리도 너무 가까워
숨 쉴 틈이 없었다.
그에 비해 원주는
공간의 여유가,
마음의 틈을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월세는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그렇다고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시쳇말로, 스타벅스가 있는 지역이면
없는 게 없다 하지 않던가.
원주는 그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몇 개의 월세 방을 소개받았고,
그 안에서 나는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 이곳이라면 다시 살아볼 수 있겠다.”
도시는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 낯섦이 어쩐지
내가 기대고 싶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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