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골절된 무릎과 발가락에 철심을 박는 큰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회복됐다고 하기엔 운동 능력은 떨어졌고,
통증은 계속됐다.
나는 이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제약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후유장해 신청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려.
치료 기록과 증상들이 기준선에 애매하게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후유장해 평가 기준은
‘맥브라이드 방식’이라는 아주 세밀한 진단 방식이다.
검사비는 크지 않지만, 이 결과는 보험사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진단서를 작성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다.
그래서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1년 하고도 4개월 만에 합의를 했다.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한 사람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직장에서 나를 챙겨주던 직원 중 한 명이었다.
퇴사 후에도 나를 찾아왔고,
우리는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연고 없는 원주.
그곳에서 그녀는
내 가장 든든한 정서적 연고가 되어주었다.
1년 동안, 우리는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거의 하지 못했다.
목발을 짚고 걷던 시절,
그녀는 내 걸음걸이를 맞춰주었다.
함께 버스를 타러 걸었던 시간,
차비를 아끼기 위해 걷던 하루 2시간,
원주의 골목을, 거리들을,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걸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걷고, 뛰고, 운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변화의 순간을
그녀는 다 지켜봤다.
말없이.
몸이 회복되자, 다시 취업 걱정이 시작됐다.
이십 대부터 쌓아온 경력은
시간 앞에서 빛을 잃었고,
그 업계에서 나는
더는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다시 다른 일을 찾았다.
하지만 길어질수록,
내 선택이 틀린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늘 이렇게 말했다.
“뒤돌아보지 마.
이미 많이 왔고, 이제는 앞으로 가야 하니까.”
지금 나는
비로소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고,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다.
내가 다시 살아가는 이 길 위에
그녀가 있다는 것,
그게 내가 회복된 진짜 이유다.
몸이 아팠던 시간보다,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더 아팠다.
하지만 그 마음을 감싸준 사람이 있어,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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